축음기, 영화, 타자기

배우는중 2025. 2. 8. 14:50

축음기, 영화, 타자기를 읽고.
축음기는 녹음한 소리를 재생하는 장치이다.
영화는 일정한 의미를 갖고 움직이는 대상을 촬영하여 영사기로 영사막에 재현하는 것이다.
타자기는 손가락으로 글자판의 키를 눌러 종이에 글자를 찍는 기계이다.
이 세 가지 기술에는 무슨 공통점이 있을까?
책에서 말하기를 인간의 기억과 기록 방식을 기계적으로 변환하며, 감각의 저장과 재현을 가능케 만든 장본인들이다.
이 매체들을 무슨 이유로 키틀러는 하나의 책으로 묶어 냈을까?
그 이유는 세 가지 기술은 단순히 과거에 나타난 새로운 기술이 아닌, 인간이 기억을 저장하고 공유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놓은 아예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을 열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기록이 문자 중심이었다.
하지만, 이 세 가지 기술들의 등장으로 소리와 영상도 기록될 수 있게 되었다.
원래 우리들은 문자를 통해서 과거의 기억들을 보존했다.
그 당시 역사를 남기기 위해서는 직접 손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야 했다. 옛 그리스 신탁에서 죽은 자들과 대화하는 방법은 글(책)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과거에는 기록이 문자에 의존했으며, 글을 남기는 것이 곧 기억을 보존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벽화에서 점토판으로 파피루스, 종이 그리고 책까지 이어지는 문자를 통해 보존해 왔던 우리의 역사가 축음기가 나오면서 목소리와 소리를 기록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기억과 역사 보존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제 사람들은 말한 내용을 곧바로 저장하고 재생할 수 있게 되었으며, 기억은 더 이상 문자에 의존하지 않게 되었다.
영화기가 등장하면서 영상 또한 기록되고 보존될 수 있었다.
이는 단순한 현실 복제가 아니라, 시각적 재현을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하고 전달하는 수단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기록의 개념은 점차 ‘글을 쓰는 것’에서 ‘기계를 통해 기억을 저장하는 것’으로 전환되었다. 즉, 인간의 감각(청각·시각)을 직접 기록하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기억을 보존하는 방식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게 된 것이다. 이제 기억은 손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기계를 통해 더욱 정교하게 보존되고 확장될 수 있는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축음기, 영화기, 타자기는 인간의 기억과 기록 방식을 기계적으로 변환하며, 감각(청각·시각·문자)의 저장과 재현을 가능하게 만든 매체들이다. 옛 그리스에서는 “죽은 자들과 대화하는 방법은 글밖에 없다”라고 했지만, 축음기의 등장으로 목소리를 기록할 수 있게 되었고, 영화기는 시각적 기억을 저장하며, 타자기는 문자를 기계적으로 생산하도록 변화시켰다.

이는 문자 독점의 종말과 새로운 기록 체계의 등장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문자가 기억과 역사의 유일한 매개체였지만, 이제는 음성과 영상도 기록의 중요한 축이 되었다. 축음기와 영화기의 발달로 기억은 더 이상 글로만 남겨지지 않으며, 타자기의 등장으로 문자는 손글씨에서 기계적 형태로 변형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기록 방식의 확장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정보의 조작 가능성을 높이고, 기억의 본질을 변형시키는 양면성을 지닌다.

축음기와 영화기의 등장으로 기억들은 더 이상 인간의 손으로 선별적으로 기록되지 않는다.
기계가 직접 현실을 저장하게 되었다.
과거에는 인간이 어떤 것은 기록하고 어떤 것은 없애며 스스로 선택하고 필터링하였지만, 이제는 미디어기술이 자동으로 소리와 영상을 포착하며 인간의 개입 없이 기억을 구성해 나간다.

글씨체는 자신의 마음가짐이라는 말이 있다.
글을 크게 쓰면 대범한 사람이고, 작으면 소심한 사람이라든지 그런 식으로 사람의 개성을 표현하기도 하는데 타자기의 등장은 글쓰기를 기계화하며, 개인의 필체와 감정을 배제하고 동일한 활자로 문서를 작성할 수 있게 되었다.
손글씨로 가지는 개성과 성격이 사라지자 기록하는 행위는 개인적인 것이 아닌 기계적이고 표준화된 과정이 돼버렸다.
축음기와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말과 움직임이 그대로 저장될 수 있는 환경에서는 인간이 정보를 편집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약화된다. 과거에는 문자를 통해 해석되어 연극을 통해 과거를 현재로 불러왔다면 이제는 원본 그대로 저장된 소리와 영상이 기억을 대신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에도 영향을 미쳤다. 축음기는 과거의 목소리를 현재로 불러오고, 영화는 한 번 지나간 순간을 반복적으로 재생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책의 저자 키틀러는 이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경계가 흐려지며, 기록이 시간의 흐름을 단순히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재구성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기록의 주체는 인간에서 기계로 이동하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기록을 직접 통제하는 존재가 아니라, 미디어 기술에 의해 규정당하는 존재가 되었다. 과거에는 문자가 정보를 독점하며 지식을 구성했지만, 현재는 소리와 영상이 문자와 동등한 기록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키틀러는 이러한 변화가 단순한 기술적 발전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을 가진다고 본다.

괴테는 "문학이란 파편들의 파편이다. 일어나고 말해진 것 중 아주 작은 부분만이 쓰여지고, 쓰인 것 중에서도 아주 작은 부분만이 남게 된다"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선택된 정보만이 문자로 기록되었고, 그중에서도 일부만이 후대에 남았다. 그러나 축음기와 영화기의 등장은 모든 소리와 영상을 있는 그대로 저장할 수 있게 만들었고, 더 이상 기록의 선택권은 인간이 보유하고 있지 않으며 기계에서 넘어가게 되었다.

이제 미디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무엇이 현실인지를 정의"하는 역할을 한다. 어떤 정보가 기록되고 재현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미디어 기술 그 자체다. 키틀러는 이를 통해, 인간이 더 이상 전통적인 의미에서 ‘자율적인 존재’가 아니라, 미디어 기술에 의해 결정된 존재라고 주장한다.

이제는 기록과 기억은 단순히 인간의 의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술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이점들은 많아졌지만, 더 이상 우리는 정보를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
키틀러는 미디어 결정론을 주장한 학자이다.
우리가 미디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가 우리의 행동과 사고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축음기, 영화, 타자기에 이어 스마트폰 인터넷은 단순히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우리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을 근복적으로 변화시켰다.
이런 미디어의 발전은 우리 삶의 구조를 바꾸는 데를 넘어 미디어가 제공하는 방식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하고 있는 것일까?
책은 읽을 때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90프로였다.
결국 이런 파편들만 자작하게 남았지만 그 파편들마저 소화기 벅차다.
좀 더 현명해지고 싶다.

 

요근래 읽어본 책 중 제일 어렵다. 책이 어려운건지, 내가 멍청한건지..